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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중목구조 
팀버프레임 건축

반하우스는 
자연주의 목조건축을 추구합니다. 
건강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며
전통공법으로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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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98

[ Since 1998 ]



대한민국의 중목구조는 

반 하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하우스 는 

1998년도에 처음으로 목조주택을 지었습니다.

 2002년도에는 제주에서 중목구조 주택을 국내에서 최초로 시공하였습니다.

팀버프레임 중목구조 주택 전남 화순
팀버프레임 중목구조 주택 전남 화순

Timberframe House

팀버프레임 중목구조


" 건축의 완성은 디테일에 있다고 합니다
반하우스의 팀버프레임은 
엄선된 목재와 숙련된 장인 목수들의 정성으로 
손 맛이 살아있는 건축을 짓습니다. "
  

자연주의
중 목구조 주택

반하우스의 주택은 자연주의  목조건축을 추구합니다.

친환경 자재와 엄선된 목재를 사용하며  

 짜맞춤 공법으로 튼튼하고 아름다운 주택을 시공합니다.


인문학적 목조건축

관리자
2024-02-27
조회수 59



도시형 대형 주택, Hildesheim, 지금의 타워펠리스 쯤 될 것 같다.





1. 여러분 브르주아를 아십니까?


" 러분 브르주아란 말을 아십니까? ...

한마디로 쫌 있는 놈. 맞아요 대충 그 뜻이에요. 우리는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대해 정확히 아시는 분 계십니까? "


수년 전 한양대 건축대학원에서 중목구조에 대한 강의를 의뢰 받고 목수 강사로 나섰을 때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의의 주제는 중목구조의 이해에 관한 내용이었는 데 질문 치고는 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브루주아의 말 뜻은 원래는 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즉 성안사람 이란 뜻이다. 어디에 산다는 게 무슨 대수인가?


"원래는 성(城)에 둘러싸인 중세 도시 국가의 주민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근대에 와서 절대 왕정의 중상주의 경제 정책으로 부를 축적한 유산 계급으로 시민 혁명의 주체가 된 사람을 칭하였다. 시민 혁명 이전의 시기에는 상당한 부를 소유하였음에도 왕과 귀족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 계급으로 존재하였다. 하지만 구제도의 모순을 깨뜨리려는 시민 혁명을 주도한 이후 사회의 주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르주아 [bourgeois]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2006. 10. 30., 이상수)





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일러스트이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등학교 때 윤리 시간인가 역사 시간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공산주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에 상대되는 말은 브르주아라고 알고는 있었으나 프랑스 대혁명이 시민혁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도 그것이 동시에 브르주아혁명이다라는 것을 그때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마 선생님들조차 정확히 말씀해 주지 않으셨 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이 브르주아인가? 그런데 브르주아 혁명? 보통 자본가, 유산계급이라고 하는 브르주아 분들께서 뭔 혁명까지 하셔 ... 기득권 계층 아니야? 라는 궁금증은 후에 독일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하며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2004년 독일 로트바일에서 열린 북미팀버프레이머 길드(Timberframer Guild of North America. 이하 길드) 주최 컨퍼런스는 전문 목수과정 수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건축과 목구조에 대한 강좌가 있었다. 컨퍼런스는 그 외에 각국에서 참가한 목수들의 출신지 나라 별 건축양식에 대해 토론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는 데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아일랜드, 뉴질란드, 아랍에미레이트, 대만 그리고 대한민국 심지어 미국 인디언출신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의 회원 분들이 참석하였다. 참석자는 모두 길드 회원이였고 또 회원 대부분이 팀버프레임 목수, 주택업체, 건축 설계, 시행업 등 건축 연관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 이여서 모여서 하는 얘기의 가장 큰 주제는 중목구조와 팀버프레임 건축 얘기이다. 아무래도 팀버프레임이라는 것이 서양식 중목구조다 보니 그 쪽분 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동양인으로는 대만 친구 한 분과 내가 전부였다. 나 역시 몇몇 중목구조 팀버프레임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여서 나름 노하우를 가지고 알고자했던 많은 부분을 확인해 나갔다. 그중 재미있는 것은 설계, 치목, 재료, 장비 및 공구, 공법 등 중목구조 와 팀버프레임이 가장 큰 주제이기는 하지만 목구조 외의 조적, 미장, 마감 등 다양한 공종에 대한 얘기도 많았다. 현장에서 부딪치는 각종 문제와 질문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나라 별 제각기 다른 해법.. 아주 재미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주를 얘기하다 보니 내가 고민하는 문제점들을 다른 나라 목수들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였고 그 해법은 같은 방법도 있었지만 나라 별로 미묘하게 각기 다른 해법이 있었다. 어쨌든 컨퍼런스 덕분에 시야도 넓어지게 되었고 나 자신의 디테일과, 우리 전통건축의 디테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뒷 얘기는 후반에 다시 한번 예시를 들어 풀어볼 생각이다.

얘기가 본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는 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얘기는
우리 담당 교수님께서 하신 얘기인 데 무슨 말만 하면 이태리 친구들이 쳐들어 온다는 말이었다. 영국 친구들도 아니고, 프랑스 친구들도 아니고 콕 찝어 이태리 애들이 쳐들어온다고 하는 얘기를 몇 차례 반복적으로 하였다, 거기에 그리고 시립 박물관 투어 중 에도 해설자가 꼭 도시의 형성과 성곽 방어선 등등 전쟁 얘기를 하였고 프란츠에 위치한 길드 사무국에서도 그 비슷한 얘기를 반복적으로 게 되었다. 그 외에도 화재, 전염병 같은 재난이나 이주로 인한 인구 플럭스 등등 순수 건축적인 요소 외에 경제, 사회, 역사 등 전반적인 인문학적인 영향 과 연관성에 대해 들었던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렇게 컨퍼런스에서 돌아와 그렇게 사회사와 역사에 대하여 정리를 좀 하다 보니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가 하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그것은 서양식 팀버프레임 ( 독일식으로는: Fachwerk )의 모습이 왜 그렇게 변화해 왔는가? 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생겼다.  아주 작은 깨닫음이지만 그 이후로 목조건축에 관하여 지금까지 어떻게라는 시각 외에 추가로 왜라는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단히 화려한 장식의 건물. 아름답지만 아름답게 만 보이지는 않는다.


중세 시대에 서양의 귀족은 일반적으로 땅을 소유하고 있는 영주로, 이들은 자기 영지 안에서 군사적, 경제적 권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지배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졌다. 이런 영주들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이 중 한 명이 국가의 지도자인 왕이 되었다. 이러한 중세 귀족 제도는 우리 동양의 중세 사회와는 사뭇 달랐는 데 따라서 전쟁의 양상 또한 많이 달랐다. 세계사 시간이 아닌 만큼 간단히 정리하면,

중세 시대의 서양에서는 성이 중요한 방어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이태리 친구들이 됐건 누가 됐건 적군이 자신의 영지로 침입하면 성 안으로 식량 등 주요 자원과 인구를 피난시키고 성문을 닫아 방어한다. 동시에 이 사태를 왕에게 알리고 왕이 지원군을 보내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쓴다. 이 기본적인 방어 전략에서 성은 안전한 보호처의 공간이었으나 , 성의 제한된 공간은 모든 농로와 주민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 성 밖의 사람들은 적군에게 노출되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브르쥬아의 진정한 의미였슴을 나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침략으로부터 버려지는 성 밖의 사람은 프로레타리아이고 . 따라서 성안에 산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다. 상당하다기 보다 천지차이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는 다는 특권계급, 그것이 브르쥬아였슴이다.

"브루주아(Bourgeois)"는 주로 중세 이후의 서유럽에서 부를 축적한 상공인과 지식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주로 활동하며, 상업, 기술,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브루주아는 자본가, 기술자, 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포함하며,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중요시하며 유지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귀족은 아니지만 돈이 있거나 기술이 있는 교육을 받은 자들. 이러한 부유한 도시 계층은 도시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프라 구축, 예술과 문화의 후원, 교육 기관의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도시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브루주아는 도시와 영지를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특정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 도시의 발전과 안정을 도왔고, 또한 세금을 낼 수 있는 부유한 계층으로서 국가나 지방 정부에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자들. 이로 인해 브루주아는 특권과 보호를 받았다.
- 네이버 인용.

어째든 전쟁의 이러한 양상때문에 성 안의 토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성 밖의 토지 가격에 비해 엄청나게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그 밖의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토지라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이유로 성안의 건축과 성 밖의 건축 양식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발전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층 수 이다.  성 안의 건축은  높이 지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용적률을 높여 지었다.  그 결과 중세 시대에 벌써 6층, 7층의 고층 목조 건물을 지었다. 땅 값이 비싸니 효율적으로 건축을 하기 위해  높게 지었다.  따라서 그 영향은 지붕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붕 내의 공간을 활용하려 높은 각의 지붕을 만들고 그 지붕 안에 몇 개의 층을 더 만들고 그 유용한 공간을  활용하였다. 용도는 창고나 하인들의 숙소 등등 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붕공간은 박공면을 제외하고는 창을 내기 어려워 대부분 어둡고 외기에 쉽게 영향을 받는 열악한 공간 이어서 창고나 하인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동화에 나오는 불쌍한 아이들이 제일 꼭대기 층에 사는 이유는 그 곳이 가장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일 꼭대기 층에 산다고 한다면 가장 불쌍하고 열악한 환경에 내버려 졌음을 뜿 한다. 전망이 제일 좋을 순 있겠지만 지붕에 막혀 방은 어둡고, 춥고 더운데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여러층 오르내려야 했다.



알프스 지역의 샬레 : 눈이 많은 지역임에도 지붕각이 그리 높지 않다.


주변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문화적 배경 속에 숨겨진 진실을 보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많이 돌아 왔는 데...




이번 챕터의 결론이다. 일반적으로 추운 지방으로 갈수록 설 하중 때문에 지붕각이 높다는 상식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붕각이 극단적으로 높은 것은 설하중 때문이 아니라 용적률을 높이려고 지붕각을 인위적으로 높였다는 것이다. 설하중 등 자연적 요소는 부재 사이즈의 가감 과 부재의 증량 등 기술적으로 극복 할 수 있다. 오히려 지붕각이 크다는 것은 그런 자연 환경적 요소 보다는 부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은 건축주의 욕망과 당시의 건축법 등 인위적인 제약과 영향으로 건축 스타일이나 디자인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같은 위도 상에서 성안 과 성 밖의 건축물의 지붕각을 보면 이해가 간다.

이어지는 얘기는 다음 장으로...




극단적으로 높은 지붕각. 지붕 공간은 창고로 사용된 듯하다. 
지붕 측면 도머에 도르레가 설치되어있다. 
이 도르레를 이용하여 상품들을 지붕 창고로 운반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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